그만둔 전 회사의 마지막 월급을 받았다. 7월 2일 자로 퇴사를 했는데, 7월의 이틀 치 월급까지 한꺼번에 받았다. 나에게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식사 딱 한 번 같이했던 급여담당자의 일손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월급을 받고 이걸로 두세 달은 버틸 수 있겠다는 안도감도 들지만, 이제는 정말 맨몸으로 부딪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을 마주한 게 실감되기도 한다. 그래도 불안감보다는 후련함이 더 느껴진다. 그리고 이게 내가 풀타임으로 받는 마지막 월급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더 발전하고 월급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는다는 전제 하에서다.
마지막 월급을 받고 지난 9년 남짓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대학 때 중간이 될까말까한 학점과 800점 남짓의 토익 점수, 작은 공모전 2개 입상, 학교 방송반과 광고동아리 활동 경력만으로만 취업을 준비했다. 딱히 내세울 만한 스펙이 없었으니 80개가 넘는 이력서를 미친듯이 찍어냈고, 운 좋게 누가 봐도 안정적인 식품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첫 회사에서는 중간에 팀을 옮기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좋은 팀장님과 좋은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빠르게 일을 배울 수 있었다. 문제는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회사들이 그러하듯 어느 정도는 군대식 문화가 남아있었고, 여기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불리면서 점차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IT 분야에서의 이직 기회가 생겼을 때 바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꿈을 가지고 이동한 두 번째 회사는 당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던, 지금도 업계를 대표하는 IT 스타트업이었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상사와 일을 하게 되었던 게 가장 큰 어려움으로 기억된다. 처음에는 꾹꾹 눌러 참다가 어느 정도를 넘으면 상한 우유팩처럼 폭발하는 것을 반복했다. 결국에는 마지막 대폭발을 하고 대책 없이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3개월 간 휴식을 가장한 구직 활동을 했고, 생활비가 떨어져가는 상황에서 빠르게 교육업계로 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업계 분위기가 보수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높은 강도의 마이크로매니징에 1년만 채우고 다시 IT업계로 이직을 했다.
네 번째 회사에서는 신규 서비스를 런칭하고, 운영까지의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팀장으로 역할이 바뀌면서 조직을 운영하는 일까지 맡을 수 있었는데, 여러 면에서 만족감이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여러 외부 요인으로 인해 조직이 망가져 버리게 되었고, 회사에서는 남아 달라고 했지만 여기서 입은 큰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회사를 이직하지마자, 직전 회사에서 입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데다 마이크로매니징까지 겪게 되어 바로 퇴사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면 쭉 글을 써 내려오니, 제대로 회사에 적응해서 일했던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과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냈다. 다만 일부의 사람들을 위해 개인의 감정과 개성의 희생을 강요받는 회사라는 체계에서, 나는 그러한 강요에 따르지 않되 최대한 피해는 주지 않도록 내가 해야 하는 일이나 했을 뿐이었다. 자유로운 영혼, 노빠꾸, 강강약약, 공수표를 모르는 남자와 같은 수식어와 함께하며,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퇴사한다'는 생각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그저 회사 체질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회사와는 다른 방법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같은 인삼이라도 누구에게는 보약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몸에 좋지 않을 수 있듯이, 회사 역시 체질에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을 뿐이다. 코로나 같은 이슈가 터질 때마다 뉴스에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다루는데, 그만큼 사회에서 차지하는 이들의 비중이 크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번듯한 직장'으로 일컬어지는 회사라는 조직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을 일정 수준의 사회적 지위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나도 가족을 비롯한 최소한의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계속 프리랜서로 살아갈 수도,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도 있다. 어떤 길을 걷게 되든 지금은 후회 없이 최대한 자유로운 환경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일을 해볼 생각이다.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가보지 못하고 후회하는 게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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