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썼던 글이 우연한 계기로 다시 기억나서 올린다. 2015년, 처음으로 이직을 하게 되어 일주일 간 쉴 수 있었는데 그때 만화방에 갔다온 이야기를 짧게 적은 글이다. 본문은 네이버블로그고, 티스토리 블로그 형식에 맞게 수정하여 다시 올린다.
동네에 오래된 만화방 하나가 있다.
요즘은 깔끔한 인테리어로 여자나 커플 손님도 쉽게 올 수 있는 만화방이 많지만, 이 만화방은 허름한 인테리어와 담배 냄새를 간직한, 마치 이십년 전쯤의 만화방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주인 아저씨는 런닝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라 처음 보는 나에게도 반말을 하지만, 그 반말이라는 게 기분나쁜 하대가 아닌 단골 구멍가게 아저씨의
안부인사 같은 느낌이다.
덥고 습한 장마라고 하지만, 올해는 다른 때보다 더욱 습한 장마다. 낡은 에어컨과 덜덜거리는 선풍기 몇 대가 고작인 만화방이라 바깥의 끈적하고 습한 더위를 막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시원하고 쾌적하다. 거기다 주인 아저씨가 갖다주시는 냉커피 한잔을 즐기며 만화책을 보면 굳이 피서를 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시원한 여름날을 즐길 수가 있다.
만화방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만화방 좌석 사이를 유유히 지나다니지만, 아저씨들의 거친 손길을 많이 타서인지 쓰다듬으려고만 하면 이빨을 드러내면서 으르렁거린다. 강아지가 으르렁대면 주인 아저씨도 으르렁대며 강아지를 혼내지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만화방 안에서는 이러한 모습도 정겹기만 하다.
아저씨 한 분의 표정에서 낭패가 보인다. 보아하니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저씨는 어디론가 전화해서 돈을 가지고 나오라 하고, 조금 있다가 초등학교 3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툴툴거리며 돈을 아저씨에게 주고 간다. 툴툴거리는 폼이 한두번 온 게 아니다. 어쨌든 아저씨는 만화책 몇 권을 더 본 후 계산을 치르고 나갔다.
책방 바로 앞에 사는 친구에게 맥주 한 잔 하자 연락이 와서 오늘의 만화방 피서를 마칠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야 항상 같은 속도로 흐르겠지만, 이 만화방에서의 시간은 특별하게 느릿느릿 지나가는 것 같다. 가끔 느릿하게 흘러가는
여유있는 시간을 느끼려고 할 때, 이 만화방을 찾으려 한다.
2015.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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