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시계가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완벽한 늦잠이다. 반드시 몇시까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도의적으로 민망함을 안고 일어난다. 아내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모유수유를 하고, 혼자 아침을 먹고, 아기옷을 빨고, 집안을 정리했다. 물론 나는 새벽 늦게까지 일을 했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두 시간은 늦게 일어난 건 민망하다.
요즘의 대략적인 일정은 이렇다. 9시에서 10시 사이에 일어나 밀린 메일이나 메시지를 처리하고, 늦은 아침을 먹는다. 업무 관련 미팅이 없다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일하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일한 다음 늦은 저녁을 먹는다. 아기 목욕을 시키 다음 다시 일하고 새벽 2시쯤 하루의 업무를 정리한 후 잔다. 새벽에 아기가 일어나 밥을 달라고 하면 분유를 타고, 아기를 옮기고, 때로는 트림도 시킨다. 아,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중간중간 아기도 봐야 한다. 그리고 아내가 낮잠을 자도록 하고 그 때는 전담하여 아기를 본다.
어쨌든 오늘은 늦게 일어났으니 아침은 건너뛰었다. 다행히 일요일이라 어디서 연락이 오거나 하지 않았다. 사실 요즘은 주중이나 주말이나 별로 다를 것도 없다. 그저 연락이 오나 안오나로 평일과 주말을 구분할 뿐이다. 어제 삼겹살을 구워 주기로 약속해서, 에어프라이어와 프라이팬을 모두 사용해 고기를 굽고 밥을 먹었다. 그 다음 먹은 걸 정리하고 아내가 아기 밥을 주는 동안 집안을 청소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벌써 3시다. 원래도 시간은 빨리 가는데 아기와의 시간은 더 빨리 간다. 그리고 '빡세다.' 국가에서 육아휴직을 왜 주는지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아기가 혼자서도 잘 노는 것 같아 아내에게 낮잠을 자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기가 칭얼대서 아내가 깨지 않게 아기를 달래 재웠다. 배고파서 일어날 때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으니 내 일을 한다. 한 시간 남짓 있다가 아기는 다시 일어난다. 수유를 끝내면 다시 저녁밥 먹을 때다. 돌아서면 밥때인 것 같다.
온전하게 일에 집중하는 시간은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함께 뒷정리를 마무리하는 오후 10시~11시부터인것 같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은 이 때 몰아서 하게 된다. 이미 피곤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일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일할 때는 피곤함을 모른다. 집중하다 리듬이 뚝 끊기는 것은 되도록 피해야 하는데, 내가 이런 생각이어도 어차피 아기가 칭얼대면 안아주고, 뭔가 불편하면 기저귀를 갈아줘야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밤잠을 재우면 새벽 4~5시에 일어나거나, 아예 통잠을 자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일부터는 외부 약속이 많아진다.
아기가 50일이 될 때까지는 정말 중요한 일 아니면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동안은 내가 가정 경제를 대부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외부 약속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혼자서 아기를 봐야 할 일이 많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러다 보니 나가지 않아도 되는 시간 동안 집에서 최대한 도와주려 했기도 하다.
그래도 내 시간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다른 아빠들보다는 아기와 보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아기가 기억할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새벽잠을 설치고도 아침 일찍 나가 하루 종일 일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와서 다시 아기를 보는 대부분의 아빠들에게 존경심을 느끼고 있다.
아직 봄이 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았다. 아기 백일이 설과 거의 겹치는데, 이 백일이 지나고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봄이 올 듯하다. 봄이 오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아내와 아이와 함께 따뜻한 볕을 맞으며 산책을 나가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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