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동안 '야민정음'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야민정음은 한글 자음과 모음을 비슷한 모양의 것으로 바꿔 표기하는 일종의 인터넷 밈이다. 야민정음을 마케팅에서 가장 잘 활용하고 이슈화 되었던 사례 중 하나가 '팔도비빔면'을 '괄도네넴띤'으로 냈던 것인데, 부정적인 시선도 많았지만 어쨌든 주목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꽤 성공했다고 본다.
이 때 나는 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소비자에 대한 환급 정책을 강력하게 밀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야민정음으로 환급 정책 관련된 단어를 만들겠다고 하루 종일 글자만 조합하는 장면을 보았다. 아니,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를 포함한 후배 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달라고도 했다.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이유를 들어보니, '요새 유행하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하루종일 연구한 야민정음은 '리펀드(Refund)'라는 결과로 나왔다. 리펀드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는지도 의문이었고, 'Reimbursement'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리펀드는 결국 실제로 쓰이지는 않았고, 누군가의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게 되었다.
2.
이런 사태가 왜 일어나는지는, 샤이니 오브젝트 신드롬(Shiny Object Syndrome)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샤이닝 오브젝트 신드롬은 특정한 매체나 광고/마케팅 기법, 밈 등이 인기를 끌면 다들 같은 방향으로 집중하는 현상을 말한다.
마케터는 필연적으로 트렌드를 잘 파악해 성과로 연결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트렌드라고 해서 브랜드나 프로덕트에 맞지 않는데도 무리하게 적용하려 한다면, 망하는 마케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럼에도 많은 마케터들은 본인의 트렌드 강박이나 의사결정자의 요구로, 자의든 타의든 샤이니 오브젝트 신드롬에 빠진다.
B급 코드가 유행하면 B급 코드의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유튜브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이면 어디서든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낸다. 특히 회사의 소위 '높으신 분'이 샤이니 오브젝트 신드롬에 심하게 걸려 있으면, 마케팅 전략과는 전혀 방향이 다른, 아니면 아예 상충되는 마케팅을 할 수도 있다.
3.
결론적으로 트렌드를 항상 민감하게 살피면서, 이 트렌드가 마케팅에 적절한지, 그리고 적용 가능한지를 항상 생각해야 하는게 마케터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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